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1
지로 무슨 말이에요?
하라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지로 이름은?
나카노와타리 써 있습니다.
준코 왜 우리 애 이름이 있지요?
나카노와타리 왜라고 하셔도.
마사코 왜 우리 애 이름이 맨 먼저 나와요?
나카노와타리 아니, 그렇게 하셔도 저희에겐……
하라다 ……이 편지를 받고 거기에 이름이 나온 모리사키 시노, 하세베 미도리, 헨미 노도카, 야시마 레이라, 시바타 아이리, 총 다섯 학생을 대상으로 중점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로 하고 다른 학생들은 귀가시켰습니다.
마사코 그럼 지금 학교에 남아 있는 건 우리 애들뿐인가요?
하라다 그렇습니다.
마사코 호출 받은 학부모도 여기 있는 우리뿐이라는 거예요?
하라다 그렇습니다.
사이.
미사오 상황파악이라니 무슨 말이에요?
하라다 학생 한 명 한 명한테 저희 교사들이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미사오 범인취급 하시는 건가요?
하라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나카노와타리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로서도 대책을 세우는 데 만전을 가해야 합니다.
하라다 학부모님들께 여쭤보고 싶은데요, 혹시 자제 분들이 가정에서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미사오 우리 애가 이지메를 시켰다는 거예요?
하라다 아닙니다.
미사오 그래서 미치코 양이 자살했다는 거예요? 부모가 책임을 지라는 거예요?
나카노와타리 아니요, 아닙니다.
미사오 그러니까 이건 그런 모임인 거죠?
나카노와타리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런 말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미사오 그렇지만 뭐죠!
사이.
나카노와타리 그러니까 우리 학교에서는 ‘진리와 우애’라는 교훈아래, 평소 저희 교사들이 하나가 되어 하느님이 기뻐하실 인간 교육을 추진해왔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배려심을 키워주기 위해, 배려심으로 넘쳐나는 학교를 만들려고 노력을 해왔습니다. 교사 일동은 정말 놀랍고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지로 그래서 우리한테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나카노와타리 ……글쎄요, 어떻게 할까요?
지로 지금 장난칩니까?
나카노와타리 아니, 그러니까 여러 가지 상의를 드리려고.
마사코 상의?
나카노와타리 앞으로의 대책에 관해서 말입니다.
찻잔이 7개가 담겨 있는 쟁반을 들고 도다가 들어온다.
도다 실례합니다.
나카노와타리 도다 선생님.
하라다 쉬고 계시라고 했잖아요.
도다 무슨 말씀이세요. 전 전혀 문제없습니다.
지로 안색이 안 좋아요.
도다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항상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지로 별 말씀을요.
학부모들 앞에 찻잔을 두고 말석에 앉는 도다.
마사코 저, 하라다 선생님.
하라다 네.
마사코 ‘시노’가 우리 애 시노가 맞나요?
하라다 아마 그럴 겁니다.
마사코 정말 우리 애 시노가 맞아요?
하라다 3반에 ‘시노’라는 학생은 한 명뿐입니다.
마사코 그래요.
준코 ‘아이리’라는 학생은 같은 반에 한 명 더 있다고 들었는데요.
하라다 아, 있습니다. 아키야마 아이리 학생.
준코 그래요. 우리 애가 아니라 그 애일 가능성도 있지 않아요?
하라다 아키야마 학생은 한자가 다릅니다. ‘사랑 애’와 다스릴 리(理)’가 아니라 ‘사랑 애’와 ‘마을 리(里)’니까요.
마사코 ‘다스릴 리’?
도다 이과(理科)할 때 ‘리’입니다.
마사코 아아, 그래요.
료헤이 ……그래서, 뭔가 알아냈나요?
하라다 네?
료헤이 우리 애들한테 상황을 파악한 결과 말입니다.
하라다 아니요. 뭐 특별한 점은. 단 모두 한 그룹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다섯 명의 학생과 이노우에 미치코 학생을 포함한 여섯 명이.
마사코 그룹이 뭐예요?
하라다 친한 친구 그룹입니다. 학생들은 모든 행동을 그룹 단위로 하거든요.
마사코 그건 학교에서 정하나요?
하라다 아니요. 학생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정해집니다.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교실을 이동할 때 함께 움직이거나 점심 도시락을 같이 먹거나. 요즘 아이들은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답니다. 어느 그룹에도 못 들어가면 계속 외톨이가 되니까.
마사코 그렇군요.
하라다 그런데 아무래도 요즘 사이가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료헤이 그게 또 무슨 말이죠?
하라다 이노우에 미치코 학생이 교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그룹에서 밀려났다고 대답했답니다. 지난 달 크리스마스 예배 때부터 그런 징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준코 밀려났다?
하라다 네.
마사코 그건 따돌림을 당했다는 뜻이에요?
하라다 하지만 다섯 명 모두 입을 모아 괴롭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미사오 그야 그렇겠죠.
시게노부 정말입니까?
하라다 네?
시게노부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게 확실해요?
하라다 그렇습니다만 왜 그러세요?
시게노부 ……아닙니다.
료헤이 애들은 지금 뭐하고 있죠?
하라다 각자 다른 방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미사오 각자?
하라다 새로운 사실이 더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미사오 선생님, 우리 애에 대해 알고 그러세요?
하라다 네?
미사오 되도록 혼자 놔두지 마시라고 부탁 드렸는데요, 전학 오던 날.
하라다 걱정하지 마세요. 교사가 한 명씩 함께 있습니다.
미사오 우리 애를 만나게 해주세요.
나카노와타리 지금 말입니까?
미사오 네. 지금 당장.
나카노와타리 그건 곤란합니다.
하라다 저희들이 좀 더 데리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미사오 역시 범인취급 하고 있잖아요!
하라다 그런 게 아닙니다.
미사오 선생님, 우리 애가 괴롭혔다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카노와타리 아니, 절대 그런 뜻은 아니고……
미사오 레이라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나카노와타리 아아, 네, 그건……
마사코 저도 시노를 만나야 해요.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지로 응.
마사코 그런 음침한 짓을 할 성격이 아니에요.
나카노와타리 아, 네.
준코 우리 애도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나카노와타리 아니, 부모님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미사오 그런 문제가 아니라구요. 레이라는 다른 애들하고 달라요.
마사코 왜 당신 애만 다르지?
미사오 다른 건 다른 거니까.
료헤이 저, 죄송한데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요.
마사코 네?
료헤이 사실을 조사하는 건 학교의 의무니까요. 우리도 그걸 이해해야죠.
마사코 ……
료헤이 이야기 끝나면 같이 집에 갈 수 있는 거죠?
하라다 네.
료헤이 그렇다면 전 이의 없습니다.
사이.
도다 전 학생들을 보고 오겠습니다.
나카노와타리 아, 그래요. 그게 좋겠네요, 좋겠어.
도다, 나간다.
료헤이 이노우에 학생 집에는 가보셨습니까?
나카노와타리 네. 조금 전에 제가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바로 근처에요.
료헤이 어떤가요?
나카노와타리 물론 많이들 슬퍼하고 계셨습니다.
료헤이 그게 아니라, 책임을 추궁한다든가, 그런 분위기는 없었어요?
나카노와타리 아니,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료헤이 뭔가 말씀하셨어요?
나카노와타리 같은 반 학생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료헤이 유서 이야기는요?
나카노와타리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
료헤이 그래요.
나카노와타리 먼저 여러분과 상의한 다음에요. 솔직히 저희들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몰라서요.
료헤이 이해합니다.
마사코 하라다 선생님.
하라다 네.
마사코 유서를 보여주실 수 있어요?
하라다 유서는 왜요?
마사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하라다, 나카노와타리를 본다.
나카노와타리, 고개를 끄덕인다.
하라다, 안주머니에서 유서를 꺼내 마사코에게 건넨다.
마사코 감사합니다.
마사코, 유서를 정중하게 받으며 읽는다.
마사코 아아, 역시 그렇군요.
하라다 네?
마사코 “선생님 수업은 재미있었습니다. 선생님 반 학생이어서 행복했습니다.” “2학년 3반. 시노, 미도리, 노도카, 레이라, 아이리” 도다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말 다음에 이름이 있네요.
하라다 네, 그렇습니다.
마사코 이건 우리 애들한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게 아닐까요?
하라다 네?
마사코 물론 처음에 “이지메를 당하고 있습니다”라고 써 있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들 이름과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하라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마사코 가해자는 따로 있어요. 우리 애들은 그룹이 바뀌어서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었던 거죠.
하라다 글쎄, 그건.
마사코 문장을 꾸밈없이 그대로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아요?
하라다 말씀 드리기가 참 곤란하지만 억지 해석이 아닐까요?
마사코 그렇지 않다니까요.
하라다 주시겠습니까?
마사코 ……예.
마사코, 유서를 돌려준다.
지로 그 유서, 아직 부모님껜 보여주지 않았다고 하셨죠?
나카노와타리 네.
지로 ‘아직’이라는 건 언젠가는 보여준다는 얘깁니까?
나카노와타리 그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로 그렇다면 그쪽 부모님들도 이름을 알게 되겠네요.
나카노와타리 네, 그렇게 되겠지요.
지로 언론이라든지 그쪽에도 공개되나요?
하라다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로 어떻게 막을 수 없을까요?
하라다 아니, 그건 이노우에 학생 부모님 판단이라서 저희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마사코 저, 선생님.
하라다 네.
마사코 우리 어머니가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뭐 그게, 저희는 학교에 여러 가지 기여해왔다고 생각 하는데요……
하라다 그거하고 이건 다른 문제입니다.
사이.
료헤이 이지메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건 확실하지요? 물론 그룹이 어쨌다 저쨌다 하는 문제는 있었지만요.
나카노와타리 그렇습니다. 적어도 현 시점에선.
료헤이 그렇다면 적어도 이 시점에서 이지메가 있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거지요?
나카노와타리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료헤이 그렇다면 그 유서에 대한 신빙성은 현재로선 의문시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말하자면 이노우에 미치코 학생이 아무 근거도 없이 다섯 명의 이름을 썼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나카노와타리 무슨 말씀인지는 이해합니다.
료헤이 섣불리 판단하는 건 위험하지 않나요?
나카노와타리 네?
료헤이 그 유서를 부모님께 드린다고 하셨죠?
나카노와타리 네, 드릴 수밖에 없지요.
료헤이 부모님은 100% 유서를 믿을 겁니다. 당연한 일이죠. 딸이 쓴 유서니까요. 언론에 공개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게 누명일지도 오른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나카노와타리 ……큰일이지요.
료헤이 학교 측에 책임을 추궁하게 되지 않을까요?
나카노와타리 아니, 그건……
료헤이 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나카노와타리 ……
료헤이 학교 측과 학부모는 서로 협조해야 합니다.
사이.
나카노와타리 죄송합니다만 좀 의논할 시간을 주십시오. 저희 판 단만으로는 좀 그래서요. 부탁 드립니다.
료헤이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말을 해서.
나카노와타리 그럼.
하라다 네.
나카노와타리와 하라다, 나간다.
준코 대단하세요.
료헤이 네?
준코 혹시 변호사님이세요?
료헤이 아니,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준코 아아, 선생님.
료헤이 네.
준코 그래서 많은 걸 알고 계시는군요.
료헤이 별 말씀을요.
마사코 혹시 사모님도 선생님이세요?
다에코 그렇습니다만.
마사코 역시 그렇군요. 교사 부부들이 제법 많잖아요.
료헤이 세상이 워낙 좁아서요.
준코 그래서 운동화를 신고 계시는군요.
료헤이 네?
준코 슬리퍼를 왜 안 신고 계실까 했어요.
료헤이 아아.
준코 왜 학교 선생님들은 운동화를 신죠?
료헤이 뛰어다닐 일이 많아서가 아닐까요?
준코 네?
료헤이 학생이 도망치면 잡으러 가기도 해야 하고.
마사코 여자 선생님도 그래요?
다에코 반대에요.
마사코 반대라고요?
다에코 학생이 쫓아오면 도망쳐야 하거든요.
마사코 어머.
지로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죠, 부모는?
료헤이 네?
지로 그러니까 우리 자식이 가해자라는 혐의를 받고 있을 때.
료헤이 가장 중요한 건 아이를 믿어주는 일이 아닐까요?
지로 믿어준다?
료헤이 자식한테 부모는 마지막 울타리니까요. 부모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건 아이들에게 확실히 전달되거든요. 그런 부모 자식이라면 웬만한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지로 그렇군요.
준코 이지메가 많이 있나요?
료헤이 있어요, 생각보다.
준코 힘들겠죠?
료헤이 힘들 거예요.
준코 힘들 거라고요?
료헤이 저는 직접 그런 일을 접한 적이 없어서요.
마사코 담임을 맡고 계시죠?
료헤이 네.
마사코 이지메는 없나요?
료헤이 네.
마사코 전혀?
료헤이 없어요, 우리 반에선.
지로 역시 지도력 문제일까요?
료헤이 그렇지도 않아요.
지로 뭔가 비결 같은 게 있습니까?
료헤이 굳이 말하자면 단호한 자세라고나 할까요.
지로 가차없이 대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료헤이 쉽게 말해 그렇습니다.
마사코 그런데 요즘엔 체벌하면 안 되잖아요.
료헤이 네, 그런 시대죠.
마사코 사모님 학교에선 이지메가 어떤가요?
다에코 우리 학교에도 있어요.
마사코 사모님이 가르치는 반에도?
다에코 네.
마사코 공립 학교입니까?
다에코 그렇습니다만.
마사코 공립 학교는 여러 가지로 힘들다고 들었어요.
다에코 ……
료헤이 저도 도립 고등학교 교사입니다만, 학교 현장의 황폐화는 공립이다 사립이다 따질 문제가 아니에요.
마사코 상황 파악이라는 건 매번 하는 건가요?
다에코 그렇죠.
마사코 불쾌한 말이네요, 수사 드라마 같아서.
다에코 그렇죠?
지로 사실 관계는 그걸로 대강 알아낼 수 있나요?
다에코 아니요. 거의 알아내지 못해요.
지로 왜요?
다에코 학생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으니까요.
지로 네?
마사코 선생님을 믿을 수 없다는 건가요?
다에코 그게 아니에요. 아니, 어떤 의미에선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마사코 무슨 말씀이신지요.
다에코 내가 괴롭혔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학생은 없어요.
마사코 하지만 다른 학생들한테 이야기를 들으면 발뺌할 수 없지 않아요?
다에코 요즘 이지메는 아주 교묘해요.
마사코 교묘?
다에코 절대 들키지 않게 하거든요. 만일 들켜도 얼마든지 입을 맞출 수 있구요.
마사코 하지만 반 아이들 중엔 이지메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학생들도 있잖아요. 그 애들도 모두 입을 맞추나요?
미사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마사코 저기요, 담배.
미사오 아, 미안해요.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마사코 담배와 라이터.
미사오 네?
마사코 담배와 라이터 제가 보관하고 있어도 될까요?
미사오 왜요?
마사코 앞으로도 또 답답해지실 거예요. 그럼 또 피우고 싶으시겠죠?
서로 노려보는 미사오와 마사코.
미사오, 끈질기게 노려보는 마사코에게 졌다는 듯이 담배와 라이터를 건넨다.
마사코 이 모임이 끝나면 돌려드릴게요.
미사오 됐어요. 별로 비싼 것도 아닌데요, 뭐.
마사코 아, 네.
마사코, 담배와 라이터를 받는다.
도다가 들어온다.
도다 실례하겠습니다.
미사오 어때요?
도다 평상시대로 하고 있습니다. 레이라도 다른 학생들도.
미사오 평상시대로?
마사코 얌전히 있다는 거네요?
도다 ……아, 네.
지로 그야 그렇겠지. 사람이 죽었는데.
준코, 방 한 켠으로 가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
잠시 후 신호가 가는 소리를 듣다가 끊는다.
마사코 아직도 연결이 안 돼요?
준코 네.
나카노와타리와 하라다, 들어온다.
나카노와타리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지요.
모두, 앉은 자세를 바로 한다.
나카노와타리 방금 저와 교감 선생님, 그리고 직원들이 모여 긴급협의를 했는데 유서는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했습니다.
료헤이 현명하신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카노와타리 아닙니다.
하라다 단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입니다.
료헤이 그건 그렇겠지요.
마사코 하라다 선생님.
하라다 네.
마사코 미치코 학생 편지 좀 보여주실 수 있어요?
하라다 왜요?
마사코 미치코 학생 심정을 제 마음에 꼭 새겨 두고 싶어서요.
하라다, 나카노와타리를 본다.
나카노와타리, 끄덕이며 승낙한다.
하라다, 안주머니에서 유서를 꺼내 마사코에게 건넨다.
마사코 감사합니다.
마사코, 편지를 정중하게 받아 방 한 켠에 가서 펴 본다.
료헤이 도다 선생님,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도다 네.
료헤이 이노우에 미치코 학생한테는, 뭐라고 할까……저……거짓말을 하는 경향은 없었나요?
도다 없었습니다.
료헤이 그건 선생님한테 그런 적이 없었다는 거지요?
도다 저한테도 반 친구들한테도 거짓말 한 적은 없었을 겁니다.
료헤이 그렇다면 거짓말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주목을 받으려고 이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나요?
도다 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세요?
마사코, 라이터를 꺼내 유서에 불을 붙인다.
하라다 이보세요!
마사코, 불이 붙은 유서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마사코 미치코 학생, 학생의 아픈 마음은 제 가슴에다 잘 새겨뒀어요.
하라다 무슨 그런 행동을!
도다, 다가가서 재를 주워 소중하다는 듯 본다.
하라다 부모님이 아시면 어쩌려구요?
마사코 우리 학교는 보통 학교가 아니에요. 세이코 학원입니다. 세이코 학원에서 이지메 사건이 있어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하라다 그건……
마사코 안 좋지요. 당연히 그래요. 누구나 아는 거잖아요.
하라다 아니, 하지만.
마사코 선생님도 공범이에요.
하라다 네?
마사코 말리려 들었다면 말릴 수도 있었을 거예요. 이 편지가 없어지길 마음 속으론 원하고 있었지요?
하라다 그건 당치않은 말씀입니다.
마사코 (료헤이에게)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라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타버린 건 어쩔 수 없지요.
마사코 무슨 뜻이죠?
료헤이 없었던 일로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하라다 설마 그건……
료헤이 솔직히 저도 고민됩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제 편지는 없으니까.
준코 맞는 얘기에요.
료헤이 유서가 있었는데 타버렸다고 하는 건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학교 입장에서는.
하라다 그야 그렇지만.
료헤이 이 유서에 대해 아는 사람이 우리 외에 누가 있습니까?
나카노와타리 교감 선생님과 각 학년 선생님 여섯 명입니다.
료헤이 그 정도라면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카노와타리 음……
료헤이 학교를 위해섭니다.
나카노와타리 ……네.
료헤이 우리 한 번 뭉쳐봅시다. 유서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여러분도 괜찮습니까?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도다 ……미치코 양이 저한테 보낸 마지막 편지입니다.
료헤이 선생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이제 그만 단념해 주세요.
도다 하지만 마지막 편지예요.
료헤이 이제 그냥 재가 돼버렸잖아요.
내선 전화가 울린다.
하라다가 받는다.
하라다 네……네……진로지도실입니다. 네? 도다 선생님? 있어요. 이시이 가나코 학생의? ……지금 와 있다고요? ……아, 좀 기다려요. 바로 갈게요.
나카노와타리 무슨 일입니까?
하라다 2학년 1반 이시이 가나코 학생의 어머님이 오셨답니다. 학생을 데리고. 도다 선생님을 만나러.
도다 알겠습니다.
하라다 저도 가겠습니다.
나카노와타리 수고해주세요.
하라다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하라다와 도다, 나간다.
지로 뭐 때문에 왔을까요? 이 시간에.
나카노와타리 모르겠습니다.
마사코 다른 반 학생인데 왜 왔을까요?
나카노와타리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나카노와타리, 나간다.
다에코 경찰이 알면 큰 일 나지 않을까요?
료헤이 그건 좀 성가신 일이 되겠지요.
다에코 좀 정도가 아니죠. 증거인멸. 완전히 범죄예요.
마사코 저, 죄송한데요. 다에코 씨도 어머니잖아요.
다에코 ……그런데요.
마사코 자기 자식 행복을 바라는 게 부모 아닌가요?
다에코 그렇죠.
마사코 그렇다면 협조 좀 해주셔야죠.
다에코 무슨 뜻이에요?
마사코 ‘깬다’고 할까요. 요즘 말하는.
다에코 (쓴웃음을 짓는다)
마사코 왜 웃죠? 뭐야……
다에코 죄송해요. 우리 학교가 생각이 나서요.
마사코 뭐라고요?
다에코 물건을 훔치거나 이지메를 한 학생한테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이 그렇게 말하거든요. ‘깬다’고. “주변 분위기를 파악했을 뿐이에~요”라고.
마사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죠?
다에코 별로, 없어요.
마사코 몰상식하시네요.
다에코 몰상식한 게 누군데요?
료헤이 다에코
다에코 ……네.
료헤이 당신이 잘못 했어.
다에코 ……
료헤이 모리사키 씨한테 사과해.
다에코 ……죄송해요.
마사코 (한숨 쉰다)
료헤이 뭐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마음은 똑같습니다. 우린 뭉쳐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튀어 온 불똥을 뿌리칩시다.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사이.
준코 그건 그렇고 아직 자기 소개도 못했네요.
지로 그렇네요.
준코 어때요? 이 참에 하는 게.
다에코 아니, 여기서 그런……
마사코 저, 전 모리사키 시노 엄마입니다. 학교 동창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로 모리사키 시노의 아빠입니다.
준코 시노 양은 농구 동아리 주장이죠?
마사코 네.
준코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마사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에요.
료헤이 하세베 미도리의 아빠입니다.
다에코 ……하세베 미도리 엄마예요.
준코 미도리 양은 반에서 성적이 1등이라면서요.
료헤이 아, 네. 그런가요?
준코 미도리 양을 이기는 게 꿈이라고 우리 애가 말했거든요.
료헤이 그래요?
준코 (미사오에게) 그리고……
미사오 야시마 레이라 엄마예요.
준코 레이라는 여름에 전학 온 애지요?
미사오 네.
준코 우리 아이리가 정말 난리가 났었어요. 외국에서 살던 애랑 친구가 됐다고. 영어 정말 잘한다면서요?
미사오 아니, 그만 하시죠, 그런 이야기는.
준코 그리고……
시게노부 헨미 노도카의 할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도모코 헨미 노도카 할머니예요.
준코 아, 네. 저는 시바타 아이리 엄마입니다. 아이리 아빠와 연락이 되질 않아서 여러분한텐 정말 죄송합니다.
마사코 아이리 아빠는 어디 다니시죠?
준코 ......유니코에요.
지로 유니코 홀딩스?
준코 …….네.
지로 지난 주에 경제 잡지 <닛케이 서치라이트>에 특집으로 소개됐어요.
준코 그래요?
지로 아니, 앞으로도 많이 발전할 거예요. 그 회사는 회사 경영을 그렇게 과감하게 개혁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정말 대단해요.
준코 ……아, 네.
지로 그런데 좀 이상하네요.
준코 뭐가요?
지로 애들은 같은 반인데 우린 처음 만났어요.
마사코 처음은 아니에요. 학년 회의라든가 동창회라든가 만날 기회는 있었죠.
준코 하지만 서로 인사하는 정도라.
료헤이 보통 학부모끼리는 그렇죠.
마사코 집이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구요.
준코 학원은 도쿄 각지에서 다니는 학생들이 많으니까요.
마사코 최근에는 사이타마(埼玉)나 지바(千葉) 등 근교에서 오는 학생도 꽤 많대요.
준코 그래요?
마사코 30% 정도가 지바, 사이타마, 가나가와(神奈川) 등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애들이에요. 그 중에 집에서 통학하는 애들은 반 정도지만요.
준코 네.
마사코 우리 때는 이 근처에서 다니는 애들이 많았는데요. 무코지마(向島)나 아라카와(荒川)에서 온 애들은 기도 못 폈는데.
준코 아, 맞다. 이 학교 졸업생이죠? 동창회 회장이니까.
마사코 그럼, 준코 씨도?
준코 42기생이에요.
마사코 전 34기생.
준코 어머, 선배님. 실례했습니다.
마사코 아니에요. 학부모가 졸업생인 경우가 많아요, 우리 학교는.
준코 그럴 거예요. 우리 애도 역시 세이코 학원에 다녔으면 하고 생각들 하니까요.
마사코 당연하죠.
사이.
마사코 미치코 학생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나요? 입학식엔 아마 왔을 텐데.
준코 ……글쎄요, 모르겠어요.
마사코 1학년 때 2반이었죠?
준코 네.
마사코 같은 반이 아니었어요?
준코 글쎄요. 생각이 안 나요.
마사코 기억하고 계신 분 있어요?
모두, 고개를 젓는다.
마사코 학생 어머니, 수퍼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있대요.
료헤이 파트 타임?
마사코 네, 그것도 미타카(三鷹)에 있는 수퍼에서.
준코 ……그래요.
료헤이 집은 이 근처라면서요.
마사코 일부러 전철을 갈아타면서 다니는 거예요. 여기 근처에서 일하면 우리한테 들키니까.
료헤이 아, 그렇군요.
마사코 그것도 상품 정리 담당이라서 아침 일찍 나간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준코 어떻게 생각하다니요?
마사코 믿기 힘들지요? 수퍼에서 일한다니. 세이코 학원 학부모가.
준코 ……그러네요.
지로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마사코 아버지도 안 계신다고 하고.
미사오 상관없잖아요, 안 계셔도.
료헤이 그건 따님한테서 들은 정보인가요?
마사코 아니, 동창회엔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까, 자연히 정보도 입수되지요.
준코 그렇구나.
마사코 그래서 미치코 양도 알바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준코 알바?
마사코 믿기지 않죠? 우리 학교 학생이 알바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준코 교칙 위반이죠.
마사코 교칙 위반 이전의 문제에요.
료헤이 ……그런 애하고도 사이가 좋았던 거죠, 미도리는.
마사코 그래요.
료헤이 죄송합니다. 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해주지 않아서요. 친구에 대해서도 전혀 몰라요.
지로 아니, 요즘 애들은 다 그래요.
하라다, 도다, 나카노와타리, 들어온다.
하라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하라다 방금 2학년 1반 이시이 가나코 학생 어머니와 가나코 학생이 학교에 왔습니다.
지로 용건은 뭐였지요?
하라다 오늘 저녁 5시경에 이시이 가나코 학생한테 편지가 왔답니다. 보낸 사람은 이노우에 미치코 학생. 자살하기 전에 우체통에 넣은 것 같습니다.
지로 설마?
하라다 여기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하라다,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낸다.
지로 시노 엄마
그 뒤에 헨미 시게노부와 헨미 도모코가 있다.
하라다 “가나코, 같이 점심 먹어줘서 고마워. 도시락 안에 진흙이 들어가 있을 때 밥을 나눠줘서 고마워. 집에 갈 때 승강기 입구에서 기다려줘서 고마워. 신발을 함께 찾아줘서 고마워. 새로 산 운동복이 없어졌을 때 조리실 음식 쓰레기통에서 찾아내, 냄새가 심하게 났는데도 운동장 옆 수도에서 함께 빨아줘서 정말 기뻤어. 제대로 고맙단 말도 못 해서 미안해”
하라다, 좀 사이를 둔다.
하라다 2학년 3반. 시노, 미도리, 노도카, 레이라, 아이리.
(2008년 극단 <스바루(昴)> 초연)
* 이 희곡을 상연할 경우 반드시 번역자 혹은 한일연극교류협의회를 통하여 작가의 허락을 얻어야 합니다.
(번역자 기무라 노리꼬 : nonki-nonki@hanmail.net,
이성곤 : gonny7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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